INSPIRATION

결정적인 순간, Photo Finish

한 장의 스카프가 결정적인 그 순간을 담아내다
A scarf that captures the very moment when everything is decided.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운동이라 불리는 스포츠는 어딘가 배고프고 가난한 아이들이 선택하는 길로 여겨지곤 했다. 스포츠는 꿈이라기보다 탈출구에 가까웠고, 운동선수의 삶은 늘 고된 훈련과 희생의 이야기로 묘사되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 문화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스포츠를 단순한 경쟁이나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열정과 재능이 발현되는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기 종목도 바뀌었고, 스포츠맨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결과만을 쫓던 분위기 속에서도 점차 과정과 정신력,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이야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는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긴다.


얼마 전, 어린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그랬다. 우리 동네에는 그녀의 금메달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한 장의 까레가 떠올랐다.

드미트리 리발첸코(Dimitri Rybaltchenko)의 Photo Finish.

까레 디자인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게 가끔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어떤 장면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 오래전에 보았던 디자인이 하나의 붓터치처럼 기억 속을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이미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금 내 주변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그 까레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난다.

출시된 지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비로소 손에 넣게 되는 까레들이 있는데, Photo Finish가 바로 그런 까레 중 하나였다. 이 까레는 드미트리 리발첸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여러 색상으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처음 이 디자인을 접했을 때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을 찾지 못해 결국 지나쳤던 까레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포토 피니쉬(Photo Finish)’라는 말은 스포츠 경기에서 매우 익숙한 용어다.
경마나 육상과 같은 경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하여 선수들의 순위를 판독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슬릿 스캔(slitscan) 방식으로 촬영된 이미지는 필름 현상 지연 없이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눈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 스포츠의 승부를 가르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리발첸코의 Photo Finish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로 그 순간의 긴장감이 디자인 전체에 응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말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 찰나의 장면을 기록하는 포토 피니쉬의 개념이 그래픽적으로 정교하게 풀려 있다. 단순한 스포츠 장면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시각화한 디자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 까레를 바라볼 때마다,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떠오른다. 누군가는 평생 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해 훈련하고, 누군가는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찰나의 결과에 환호한다.

당분간은 이 까레를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스카프는, 결과가 결정되는 그 순간보다도 그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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